“가게에 가끔 기침을 하거나 감기 기운이 있는 손님이 옵니다. 손님과 저는 마스크를 끼지 않고 스킨십을 하고 시간이 끝나면 찝찝한 마음으로 방 정리를 합니다. 만약 방금 다녀간 손님이 코로나 확진자고 저도 감염이 된다면….”(예린, 필명)
“같이 일하는 언니(동료)들이랑 매일 머리를 싸맸죠. 하…,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 언젠가 좋아질 테니까 지금은 몸을 사릴까, 아니야, (코로나19에 걸리면) 동선을 공개한다는데 이런 때일수록 출근을 빡세게 해서 돈을 모아 잠적을 하자. 이런 시국에 집에 다 있자고 하는데 꼭 출근을 해야 하냐. 그러다 민폐다, 저밖에 모른다, 갑론을박하고, 싸우고 막…. 사실 우리끼리 아무리 말해봐야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막연하게 서로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그것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김씨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닥친 2015년에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애초 코로나19도 메르스와 다르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메르스도 처음에는 코로나19 못지않게 떠들썩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분위기가 잠잠해졌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출근하지 말고 2, 3주만 쉬면서 지켜보자”고 한 것도 그래서다. 업소는 발끈했다. 세상은 떠들썩한데, “유난 떨지 말고 나오라”고 다그쳤다. 욕설이 섞였다. “대구도 아닌데, 오버하지 말라고, 감기 같은 거라고, 뉴스를 많이 봐서 염려증 걸린 거라면서 하도 닦달을 하니까, 그러니까 말 들어주는 시늉을 해야 할 거 같아서 그냥 출근하기로 했죠, 뭐.”
이씨는 원래 2019년 초 성매매 집결지를 나왔다. 하지만 “가진 게 없어서 당장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고, “마땅한 대안도 찾지 못해” 이른바 보도 사무실에 나갔다. 노래방 도우미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코로나19가 닥쳤다. 이씨는 근면했다. “평균 5개를 돌아야 10만~15만원을 손에 쥐었”다. 저녁 7시가 넘으면 출근해 늦으면 새벽 3시를 넘기는 날도 있었다. 김씨에 비해 동선도 넓고 접촉하는 사람 수도 많았다.
결국 그만둔 것은 2차 대유행 직후다. 지난해 봄 1차 대유행의 공포 속에서도 노래방 일을 멈추지 않았던 그였다. 9월 2차 대유행이 끝나고는 왜 갑작스럽게 일을 접었는지 물었다. 그는 2019년으로 시간을 되돌렸다. 그때 업소 화재로 가까운 ‘언니’의 죽음을 목격했다. 그 삶이 자신의 삶일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거기에 “이제는 아이랑 건전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보태졌다.
말 속에 아이가 등장하면서 그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이를 생각하면 일을 시작하면 안 됐”지만 “아이 때문이라도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코로나가 아이까지 집어삼키면 어쩌나 걱정이 생겼다.
“불안하죠. 그래도 당장 밥이 걸려 있는데, 동시에 챙길 수는 없으니까. 1년 내내, 내가 감염되면 너도 감염되는데, 그래도 너를 굶길 수는 없고, 너랑 나랑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너랑 나랑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고민 속에 살았죠.”
최 대표는 “지난해 4월 서울 강남 한 업소에서 확진자가 나왔을 때 유일하게 여성만 직업이 공개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언론은 여성만 집중 조명했다. 방역당국은 여성의 동선을 공개하고 그를 고발했다. 동선 공개가 알려지면서 성매매 현장 여성들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인터뷰한 이들도 그때를 기억했다. 김은수씨는 “그때 주위에서는 동선 공개가 되느니 아파도 차라리 집에서 죽고 만다는 말을 하곤 했다”며 “2주간의 동선을 공개하는 것을 보고는 아무리 아파도, 죽을 거 같아도 참았다가 2주 뒤에 병원에 간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제 동선이 밝혀지면 사람들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요. 웬 정체도 알 수 없는 외진 건물에 제가 몇시간 동안 머물렀는데 그 건물이 키스방이라는 게 알려지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아무리 저를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이라도 그 순간만큼은 이성보다 창녀에 대한 혐오감, 공포감, 분노 이런 감정들이 앞설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예린, 같은 책)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전국 463명인 오늘(3월19일)도 전국 34개 지역 1570곳(2019년 기준)에 이르는 성매매 집결지는 여전히 불을 밝힌다. 김씨가 뛰쳐나온 유흥주점이나 이씨가 일했던 노래연습장도 손님을 맞이할 것이다. 마스크 하나 제 뜻대로 쓰지 못하는 곳으로, 다른 김·이·박들은 출근할 것이다. 그곳은 방역과 동떨어진 밀집·밀접·밀폐 ‘3밀’의 현장이다.
읽기 : “우리는 마스크를 쓰지 못했다”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모바일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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