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세미나, 라운드 테이블/2023 탈시설 기획 토론회 : 성매매 여성과 시설의 역사

[후기] 수엉, 탈시설 기획 토론회: 성매매 여성과 시설의 역사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3. 6. 13. 22:54

photo by. 은석

 

탈시설 성매매 토론회에 관한 10가지 생각

수엉

 

1.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한 인간의 고유성이며,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고유성을 이해하고 존경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 개체는 매 숨마다 자신만의 몸과 꿈과 감정과 정신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고유하고, 독자적이고, 시간과 함께 쌓이거나 흩어진다. 나에게 사랑은 그런 고유성의 결을 이해하고 그 곁에 머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성노동과 얽힌 여성들의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그 고유한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이야기 옆에 나의 이야기를 놓아둔다.

2. 나는 IW31, 차차 등으로부터 “존재하는 사람을 없앨 수 없다”는 명제를 당위가 아닌 사실로서 다시 배웠다. 시설은 존재하는 사람을 당장에 없애려는 불가능한 그러므로 끝없는 기획이다. 시설은 특정한 인간을 감금해 그들을 사회에서 치워버린다. 또한 시설을 중심으로 이 세계 전체를 재구축한다. 모든 인간을 수감자와 잠재적 수감자로 분류한다. 후자는 언제든 전자가 될 수 있으므로, 시설은 인간의 뿌리에 수감의 위협을 심어놓는다.

3. 한국의 20세기를 수놓은 성매매와 감금의 역사를 생각한다. 일본제국주의 성노예 및 성매매 제도는 한국전쟁시기에 미군/연합군/한국군위안부로 이어졌고, 국가재건/군부독재시기에는 기지촌 성매매 제도, 기생관광, 내국인 대상 성산업으로 계승되었다. 이 역사는 감금과 시설의 역사이기도 하다. 일본제국주의군, UN군, 국군이, 독재정권이, 부녀보호소가, 요보호여자시설이, 성병관리소가, 직업보도소가 "윤락여성", "요보호여성" "기지촌위안부", "미혼모", "가출여성", "저임금 근로여성" 등 온갖 여성의 이름으로 여성들을 가두었다.

4. 1990년대 이후, 그리고 오늘날, 여성의 이름으로 여성을 가두는 자는 누구인가? 오늘날 여성 대상 시설은 사라졌는가? 감금은 사라졌는가? 인간을 가둘 수 있는 다양한 힘과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시설화는 지배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보호/관리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사회와 분리하여 권리와 자원을 차단함으로써 불능화/무력화된 존재로 만들며,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제한하여 주체성을 상실시키는 것이다." (시설사회, 285쪽)

5. 1980년대 중반부터 여성 보호/수용 시설은 축소되었다. 나는 당시 시설에 살았던 여성들은 오늘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해한다. 시설로 인해 오히려 스스로의 생에 대한 권한과 역량과 기회를 빼앗긴 그 여성들은 퇴소 후에, 혹은 보호시설의 축소 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아직 살아계시는 분이 많을 텐데.

6. 요보호여자시설은 윤락여성들에게 자수와 미싱을 가르쳤고, 자활센터에서는 탈성매매 여성들에게 네일을 가르친다. 다를까? 어떻게? 얼마나? 실제로 취업과 인생에 조금도 도움이 안 되고, 그래서 이후에 다시 이 여성들을 성산업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은 닮은 듯하다.

7. 요보호여자시설은 (이론상) 한 여성을 영원히 강제로 감금할 수 있었다. 상담소-쉼터-자활지원센터로 이어지는 국가 주도 탈성매매 지원체계는 한 여성을 영원히 성매매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사회에 안착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성노동자가 사회로의 복귀를 요구받는 순간, 성노동자가 살아온 세계는 사회가 아닌 것이 된다. 그렇게 성노동자는 시민도, 노동자도, 국민도 아니어진다. 그렇게 재구축된 세계는 여전히 "윤락여성"과 "윤락할 염려가 있는 여성"을 생산한다.

8. 오늘날 상담소-쉼터-센터는 여성 인권의 이름으로 이루어져있다. 제도는 여성들에게 자신이 성매매/알선 피해자임을 증명하길 요구한다. 유일한 증명법은 탈성매매다. 이들에 따르면, 이 여성들의 탈성매매 실패는 곧 성매매 산업 존속을 의미한다. 성매매 산업은 이 여성들의 탈성매매 실패 때문에 존속한다. 이들이야말로 성산업을 존속시키는 자이며, 그러므로 포주다. 한편, 상담소-쉼터-센터 안의 대부분은 이 지원시스템이 성공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9. 쉼터와 센터 이용자들은 많은 것을 익혀야 한다. 통제, 빈곤, 규율, 수직구조, 노동착취, 모멸. 이 곳의 일상은 실현가능성 없는 제도, 부족한 자원, 통제와 규율, 징벌과 훈육으로 이루어진다. 이 일상은 시설이용자와 활동가들이 끝없이 서로를 원망하게 만든다. 이 여성들에게 제도와 사회와 법에 대한 불신을 가르친다. 여성빈곤을 악화시킨다. 시설 안의 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 한 발제자는 자활센터가 실패와 빈곤만이 쌓이는 장소인 듯 느껴진다 말했다. 탈성매매 지원체계는 빈곤과 성노동의 닫힌 순환을 지원할 뿐이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함께 실패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이 공간 역시 성노동 회로의 일부라고 봐야한다. 한 사람이 사회에 존재해야 하는 위치를 강제하는 것이다.

10. 사랑하는 이의 책장에서 본 류은숙의 책 제목, "사람을 옹호하라"라는 구절이 입가에 하루종일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