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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성노동자 제물로 에이즈 예방?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4. 11. 11. 19:05

성노동자 제물로 에이즈 예방?

[아시아의 과학과 윤리_캄보디아]

캄보디아에서 진행된 HIV 바이러스 예방제 테노포비어 실험은 왜 중단됐나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의료보장 없이 강행, 제약회사만 배불리는 꼴 

▣ 프놈펜=사티야 시바라만(Satya Sivaraman)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것은 윤리와 임상실험의 문제에서 전세계 제약산업을 발칵 뒤집어놓은 캄보디아 여성 ‘성노동자’(Sex worker)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연은 2003년 중반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질리드 사이언시스사(Gilead Sciences)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예방제가 될 수 있는 ‘테노포비어’(tenofovir)라는 신약을 실험하며 시작된다.

질리드사가 2001년에 만든 테노포비어는 다른 항레트로바이러스(HIV는 레트로바이러스의 일종임)제와 함께 사용할 때 HIV를 통제하는 데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실험 결과, 이 약품이 HIV의 최초 감염을 막는 효과가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는 약을 꾸준히 먹기만 하면 HIV에 걸리지 않을 수도 있음을 뜻한다.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에이즈에 ‘백신’이 탄생한 것이다.

콘돔을 쓰지 않게 만들다

테노포비어가 HIV의 백신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보츠와나·캄보디아·가나·말라위·나이지리아·타이·미국 등에서 시작됐다. 미국 건강연구소(US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와 빌&멜린다 게이트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의 자금 지원을 받은 연구가 HIV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1천 명의 캄보디아 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그렇지만 2004년 8월11일 실험은 중단된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캄보디아인을 실험용 재료로 사용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연구팀이 실험 도중 참가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질병 등에 의료적인 보장을 해주지 않겠다는 의견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프놈펜에 본부를 둔 성노동자 단체와 국제 HIV·AIDS 운동가들은 그 실험이 비윤리적이라고 판단했고, 캄보디아 정부는 실험을 당장 중단시켰다. 그들이 보기에 이 실험으로 배를 불리는 것은 거대 제약회사뿐이었다. 캄보디아 성노동자들의 연합인 ‘변화를 위한 여성’(Women for Change)이 실험에 반대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실험의 구성에 참가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둘째, 약의 부작용에 대해 크메르어로 적힌 안내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따라서 참여자들에게 명시적인 동의를 받은 게 아니다. 셋째, 테노포비어가 면역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성노동자들이 콘돔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약이 예상했던 효과를 내지 않고 여성들이 HIV에 감염된다면 회사가 어떤 도움을 줄지 명확히 보장하지 않았다. 넷째, 테노포비어는 신장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등 몇 가지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길리드사는 이에 대한 사후 처리도 명확히 보장하지 않았다.

“캄보디아의 약물실험이 왜 실패했는지 아십니까. 연구자들이 참가자들이 감수해야 할 위험에 대해 보험을 들거나 보상을 해주는 책임을 떠안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변화를 위한 여성의 회원인 수 수트헤비가 말했다.

그렇지만 약물실험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테노포비어 실험에 참여했던 오스트레일리아 전염병학자 존 칼도어 박사는 “만약 캄보디아 성노동자들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면 실험을 진행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약물실험을 그들이 가로막았다”고 주장했다. 현행 의학연구 규정을 보면, 실험 참가자들에게 돈이나 다른 인센티브를 주는 것을 금하고 있다. 돈이 실험에 참여하는 주요 동기가 되고, 연구의 전체적인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질병에 대해 의료보험을 들어주는 것은 참가자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타이에서도 안정성·투명성 논란

수 수트헤비 같은 캄보디아 성노동자들은 이에 대해 “가난한 캄보디아 실험 참가자들에게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의료 비용에 대한 걱정은 절실한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회사는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자원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실험을 거쳐 새 약이 개발되면 수백만달러의 돈을 벌게 됩니다. 그런데도 실험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그 돈을 나누려 하지 않는군요.”

캄보디아에서 테노포비어를 둘러싼 논란이 시작되자,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진행 중이던 다른 실험들도 난관에 봉착했다. HIV·AIDS 활동가들이 실험이 윤리규정을 어겼다고 발표한 뒤 카메룬 건강부는 2005년 2월 “실험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3월 국제가족건강(Family Health International)은 나이지리아에서 진행 중인 테노포비어 임상실험이 ‘필요한 과학 기준을 만족하지 못해’ 중단한다고 밝혔고, 타이에서도 HIV·AIDS 운동가들이 실험의 안정성과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해 실험의 기준을 놓고 질리드사는 타이 건강국 관리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나·말라위·보츠와나·미국에서는 실험이 진행 중이고, 카메룬에서도 곧 실험이 재개됐다.

테노포비어 실험같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학실험에 대한 윤리규정의 역사는 1964년 제네바에서 ‘세계의료연합’(World Medical Association)이 채택한 ‘헬싱키 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세기가 지나, 최초 선언에 많은 수정이 있었고, 특수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도입됐지만, 기본적인 문제의식에는 변함이 없다. 어떻게 하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학실험이 과학적 신뢰성을 유지하면서 그 시대의 윤리규정을 만족시키는가 하는 것이다.

과학과 윤리의 균형은 그동안 많은 도전을 받아왔다. 심각한 질병에 재빨리 대응해야 하고 자원 부족이라는 제약에 시달리는 의학실험의 상업적 속성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이 윤리적인지에 대한 기준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도 하다.

“복잡하게 얽힌 이슈와 사람들 때문에, 현재의 윤리 가이드라인에 얽매이는 것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지금 반영되지 않는 새로운 개념들을 중심으로 가이드라인이 크게 개정돼야 합니다.” 인도 의학연구 평의회(Indian Council of Medical Research)의 바산타 박사가 말했다.

실험 참가자들과 충분히 대화하라

그동안 제약회사와 의학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로 조직된 집단의 등장에 신경쓰지 않았다. 제약회사들은 인구와 건강 문제에 관심을 갖는 큰 시민단체나 보건부 관리들과 접촉해 실험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낮은 임금과 높은 문맹률 탓에 작은 돈에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 실험에 참여하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참가자 집단들이 점점 더 조직화되고 있고, 제약회사와 말 잘 듣는 시민단체가 진행해온 실험 절차에 대한 비판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의료윤리 전문가들은 미래 임상실험의 성공 열쇠는 “제약회사들이 참가자들과 충분히 대화하고 유연한 태도를 가지며 참가자들에게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참가자들의 목소리에 좀더 귀기울일 때에만 최상급의 의학 연구 수준을 유지하면서 중간에 불거지기 마련인 윤리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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