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 활동 소식/발언문

[발언문 공유]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대회 : 유원(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 5. 15. 06:25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대회

“싸우는 몸, 분노의 외침, 권리의 연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유원

안녕하세요! 저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유원 입니다! 주홍빛연대 차차는 주홍글씨로 낙인찍힌 모든 성노동자를 위해 차별과 낙인을 차근차근 없애 나가려고 일하는 단체입니다. 저는 성노동자 활동가로서, 여기 계신 다른 활동가 님들과 같은 이유로 이자리에 왔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죄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삶은 소중하기 때문에 왔습니다.

2022년, 한국에서 성노동자는 성매매 특별법상 범죄자로 낙인찍혀 있습니다. 성노동자를 대상으로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이 낙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폭력을 당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는 진실을 은폐합니다. 어차피 범죄자니까, 성노동자에게도 잘못이 있으니까 폭언도, 폭행도 괜찮다고 여깁니다. 기본적인 인권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성노동자들은 성노동 과정에서 강간을 당해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성노동 중 성노동자의 의사에 반하는 촬영을 당해도 불법촬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네가 성노동자라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겠다는 말에 협박당해 더 심각한 성착취를 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성소수자 또한 그 존재 자체가 불법이었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나라에서는 동성애가 불법행위입니다. 그런 생각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성노동자를 죄인으로 모는 사람들이 성노동자에게 하듯이 성소수자를 대합니다. 어차피 불법적인 존재니까, 성소수자들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믿으니까 그들을 향한 폭언도, 폭행도 괜찮다고 여깁니다. 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 여성은 법적으로 ‘부녀자’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강간이 강간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아직도 남아서 항문성교 등을 하는 남성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합니다. 성소수자에 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긴 요즘에도 아웃팅 협박 때문에 위험에 처하는 성소수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사회문화구조가 우리 존재에게 부여한 구조적 유사성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소수자가 어디에나 있듯이 성노동자 또한 어디에나 있고, 성노동자이자 성소수자인 모습으로 서로를 만날 때도 많으니까요. 여기 계신 분들도 이미 아시겠지만, 성노동에 종사하는 성소수자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노동은 주로 노동계급의, 차별받는, '정상적인'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게 되는 일이거든요. 몸에 누적된 억압과 차별의 경험, 정신질환 등의 이유로 규격화된 노동을 할 수 없는 성소수자들이 자꾸 성노동 현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오곤 합니다.

2020년 숙명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직 경험이 있는 트랜스젠더 469명 가운데 57.1%는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구직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노동자를 채용할 때 여자가 여자답지 못하고 남자가 남자답지 못하면 탈락시키는 고용차별을 당연한 것이라고 판단하니까요. 구직에 성공해도, 성소수자들은 성별 이분법적인 직장 내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특히 트랜스젠더들은 업무와 상관없이 성별 정체성에 대한 지적과 질문을 받기도 하고, 성희롱 또는 성폭행을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주민번호 뒷자리 1,2와 불화하는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생활비뿐만 아니라 때로는 성전환에 필요한 목돈 등을 마련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선택지로 성노동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 우리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죠. 성노동 하는 여자들은 더럽다. 동성애자들 더럽다. 트랜스젠더들 더럽다. 우리의 삶에는 꼭 더럽다는 멸시가 따라붙게 됩니다. 더럽게 병을 옮기는 존재라는 낙인이 따라붙게 됩니다. 그런 말은 듣지 않는 게 가장 좋겠죠. 그런 말을 계속 들으면서도 괜찮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 말을 계속 들으면, 오래 살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런 말을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해봤어요. 더럽지 않다고 대답할까? 그렇지만 더럽지 않다고 말하기엔 또 더럽지 않게 사는게 가능한 사람이 우리 중에 별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 그런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계속 더러울 수밖에 없다면 저는 그 사람을 더러움 속에 혼자 내버려두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성노동자와 성소수자들은 더럽지 않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더러움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러운 존재여도 괜찮다고, 그런 존재도 혐오당하고 차별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김현경 선생님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해진 성별이분법에 속하지 않을 때, 정상적인 여자라면, 정상적인 남자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세상의 기준 위에서 계속 미끄러질 때, 그럼에도 계속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고 삶을 그만두지 않을 때 우리는 더러운 존재로 명명됩니다.

<사람, 장소, 환대>에서 우리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을 더 인용해 보겠습니다.

“‘더럽다’는 말은 죽일 수도 길들일 수도 없는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담고 있다. 그 말은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부정이 굳이 필요했음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주체성을 역설적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더러운 년’이라는 욕을 들어도 전혀 위축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런 말을 듣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다.

저는 이렇게 감히 광장으로 나와 세상에 균열을 만드는 우리가 자랑스럽습니다.

발언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