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차별금지법, 준비는 다 했는데 제정은 누가 할래?"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유원
안녕하세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유원입니다.
차별로 인한 불이익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차별이 좋고 평등이 싫다는 사람은 만나보기 힘들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성노동자 권리 운동 단체가 차별금지법 관련 발언을 한다고 하면 좀 불안하게 느끼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성노동자들이 괜히 나섰다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발과 저항을 더하는 건 아닌지 눈살을 찌푸릴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성노동자랑 엮이기 싫은데, 성노동자가 왜 갑자기 이런 의제에 숟가락을 얹지? 설마 지금 성노동자를 차별하지 말라고 주장할 생각인가? 하다 하다 세금도 안내는 가정파괴범들, 더럽고 문란한 여자들을 차별해선 안 된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나? 성노동자 주제에 페미니스트라니, 성노동자 주제에 사회 정의를 말하다니 웃기는 년들… 이거 다 차차 구성원들이 실제로 겪어본 반응인데요, 하지만 들어보세요 여러분.
성노동자인 게 알려지면 성폭력의 타겟이 될 수도 있고,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구직 시장에서 탈락될 수도 있고, 인간관계가 파탄날 수도 있고, 이 사람 저 사람 모르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숨어 살게 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어떤 여자들은 굳이 성노동자가 되곤 합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정말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주, 장애, 질병, 학력, 빈곤, 나이, 성정체성,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가족형태 등의 이유 말입니다. 차별금지법에서 차별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는 바로 그 조건들이요. 어떤 이주 여성은 출신 국가와 사용하는 언어가 밝혀지면 괴롭힘을 당해 일자리를 잃고 성노동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어떤 여성홈리스는 당장 오늘 내일 먹고 잘 곳을 구하기 위해 성노동을 해서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얻기도 합니다. 장애인 노동에는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장애여성은 최저임금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성산업에 진입합니다. 어떤 여성청소년은 폭력적인 가정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조건만남을 합니다.
그러니까, 성노동자들은 이미 차별의 결과로서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은 차별의 결과로서 존재합니다. 성노동자인 저의 위치도, 성노동자가 아닌 당신의 위치도 차별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저는 합당한 평가, 공정한 경쟁과 같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게 그런 말은 하나의 제스처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차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절대 완전히 합당하거나 공정할 수 없으니까요.
성노동자가 겪는 차별은 어떤 이유를 들어서든 정당화됩니다. 성매매는 불법이니까 차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합법 노동자인 유흥업소접객원도 차별합니다. 학생 때 공부 안 해서, 게을러서 이런 일 하는 거니까 차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치열하게 공부하며 사는 학벌 좋은 성노동자도 차별합니다. 그냥 이 사람이 차별받은 결과로 존재하기 때문에, 차별해도 괜찮기 때문에 차별하는 거예요. 정당하게 누군가를 차별할 이유 같은 건 없어요. 비성노동자들을 똑같은 이유로 차별해 보려고 하면 차별이 잘 안 됩니다. 성노동자에게 하듯이 차별을 해 보려고 노력해도 잘 안 돼요. 예를 들어서 재벌들이 불법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게으르게 돈 버는 건 성노동해서 돈 버는 것만큼 혐오당하지 않으니까요.
차별은 박해해도 되는 사람을, 때로는 죽여도 괜찮은 사람을 만듭니다.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삶을 개인이 혼자 감당하게 만듭니다. 모두가 나눠 져야할 책임을 혐오로 자연화해 회피하게 만들고, ‘정상인’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고통을 낙인 찍힌 자들에게 몰아줍니다. 부당한 모순을 개선하기 위해 저항하는 대신,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도전하는 대신, 우리는 말 잘 듣고 튀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남을 손절하고 따돌리며 나와 다른 집단을 밀어내는 사람이 되도록 권장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불안하지 않으세요? 차별이 이렇게 혹독하고 무서운 건데, 언젠가 나도 차별당하게 될까 봐 걱정되지 않으세요? 여자라고, 혹은 남자라고 트집 잡힐까봐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하면서 일하고, 도태되지 않으려고 남들 하는 거 눈치 보면서 쫓아가고, 소수자성을 철저히 숨기며 내가 진짜 원하는 것보다 껍데기로 내놓을 것들을 더 악착같이 가꾸고, 늙거나 병들거나 장애인이 돼서 사회에서 밀려날까 봐 내 몸도 하나의 자원으로 대하며 관리하고, 어린이들을 훈련해 ‘인재’로 만들고자 닦달하는 게 피곤하지 않으세요? 사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거 같다고 생각해 본 적 없으세요? 심지어 앞에 나열한 이 모든 노력이 운 나쁘면 실패하게 될 수 있다는 게, 그냥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두렵지 않으세요?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 해도 지금 당장 차별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을 시작으로 달라지는 것들이 우리를 또 다음 차별에 대응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누구도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차별금지법의 약속, 일단 한 번 제정하고 나면 무르기 힘들거든요? 약속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러면 저는 좀 덜 불안할 거 같아요. 삶이 덜 두렵고, 덜 힘들고, 남에게 더 마음을 열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가 다르게 살 수도 있어요. 지금과 다르게 살 수도 있어요. 변화를 위한 움직임에 차차도 함께합니다. 성노동자들이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