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 텍사스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멜섭의 안내서
멜섭왹비
평소 집결지라는 공간에 와 볼 리 없는, 이 공간이 생소하고 무서운 여러분에게 미아리 텍사스란 공간을 안내해주는 글입니다. 모쪼록 길을 잃지 않고 잘 따라와 주셨으면 합니다.
아직도 제가 이 이야기를 써도 되는 건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혹여나 이 글이 집결지 성노동자들을 타자화 하는 건 아닐지. 나도 모르게 시혜적인 시선을 담는 건 아닐지. 그렇지만 이런 두려움에도 글을 써 내려가는 이유는 집결지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과 노동 착취 속에 고립되는 집결지 성노동자들과 여러분이 관심을 두고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실천하여 이 공간에 균열을 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미아리 텍사스는 미아역이나 미아 사거리역보다는 길음역과 가까워요. 길음역 10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미성년자 출입금지가 쓰여있는 안내문이 보이는데 10번 출구 근처에 걸어 다닐 수 있는 내부 순환로가 있어요. 거기를 쭉 따라 내려가다 보면 미아리 텍사스가 나옵니다.
그럼 이제 미성년자 출입 금지 안내문이 붙어있는 곳에 들어가 봅시다. 당신이 남성 패싱이라면 이모들이 호객행위를 할 것이고, 여성 패싱이라면 모두 아무 말 없이 당신을 쳐다볼 거예요. 집결지에 얼굴이 익숙한 성노동자, 이모가 아닌 못 보던 여성 패싱의 등장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인 공간에 비 관계자가 멋대로 들어와 버린 셈이라 매서운 눈초리를 받으며 거리를 걷게 될 겁니다. 이 거리를 걸어 다니며 집결지라는 공간은 성별 이분법 시스템이 철두철미하게 적용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남/여 둘 중 하나로 분류되어 남자라면 호객의 대상(손님)이 되고 여자라면 성노동자가 아닐 시 이곳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존재가 되니까요. 성별 이분법과 가부장제가 구현되는 이 구조의 작용이 집결지라는 공간을 열악한 위치로 고립시키는 데 일조한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집결지와는 달리 미아리는 유리방에서 나오는 빨간 조명으로 거리가 가득 채워져 있지 않아요. 이 곳은 유리방의 형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다른 집결지와 똑같게 유리방 초이스 형식이었지만 김강자의 개입 이후로 유리방을 모두 없애고 바깥에서 안을 볼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졌어요. 이러면 가게가 영업하는지 안 하는지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그래서 가게 문밖에 삐끼이모들이 호객행위로 손님들을 데려와 초이스 볼 때만 문을 열어줍니다. 손님에게 초이스를 보여줄 때 가게 문을 열고, 입구에 있는 커튼을 걷어내면 홀에 있는 성노동자들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이중 가림 구조로 문-커튼-홀 구조의 셈입니다. 성노동자들은 좌식의자에 앉아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초이스를 봅니다. 저희 가게는 하얀 드레스(미아리 홀복)를 입지 않고 자유롭게 홀복을 입는 편이라 하얀 드레스는 하체에 덮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아직 하얀 드레스를 입는 가게도 있다고 해요. 미아리 홀복 상의는 브라탑처럼 생겼고 하의는 롱기장 스커트 형식인 드레스로 이루어져 있어요. 예전엔 이걸 개개인이 구입해서 홀복 값으로 나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집결지는 포주-성노동자 이렇게만 관계가 이뤄지는 줄 아는데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삐끼이모(마담이모), 포주(업주), 주방이모, 성노동자가 여기서 관계 맺는 사람들의 이름표입니다. 업주야 다들 포주포주 하니 잘 아실 거 같아요. 건물주에게 돈 주면서 가게 운영하는 사람이고 성노동자들은 그들을 이모/삼촌이라 부릅니다. 주방이모는 식사를 비롯한 여러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집결지는 먹자(가게에서 먹고 자는)가 기본적인 공간이라 주방이모가 계십니다. 가끔 주방 이모면서 업주인 사람도 있어요. 성노동자는 이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저는 다른 업종에서 일할 때 아가씨로 많이 불렸는데 집결지에선 그런 적이 거의 없었던 거 같아요. 아가씨란 호칭보단 그 안에서 쓰이는 가명으로 더 많이 불려요. 마지막으로 삐끼이모(마담이모)는 누구인가. 단순히 손님 호객행위를 하는 인물만은 아닙니다. 문을 열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자. 텍사스라는 공간에서 '문'을 열 수 있다는 건, 그 가게 영업시간의 총괄 책임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업주가 모든 총괄을 한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가게 영업시간에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은 삐끼를 치는 마담 이모입니다. 업주도 이때만큼은 마담 이모를 터치하지 않습니다.
질 나쁜 진상 손님인걸 알고 있음에도 그 방에 들어가라는 강제력. 그렇게 해서 유지되는 단골손님과 가게 운영.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집결지의 환경. 성매매 방지 특별법 이후 집결지는 많이 죽었습니다. 성특법 이후 악덕 포주를 신고하기 쉬워졌고 집결지에서 일어났던 인신매매&감금 사건이 가시화될 수 있었던 걸 알고 있습니다. 이 법이 있어서 집결지에 있는 저희가 조례 지원 대상자가 되어 지원을 받을 수 있단 것 또한 압니다. 하지만 성매매 특별법 이후 미아리에는 더 이상 손님이 예전처럼 오지 않습니다. 오는 손님들은 예전에 미아리에 와봤던, 아니면 계속해서 미아리를 찾던 손님들입니다. 이건 곧 단골손님으로 가게가 운영된단 거고 단골손님이 진상짓을 해도 쉽게 내쫓을 수 없단 걸 뜻합니다. 콘돔을 끼지 않고 질내 사정하는 걸 강요하고, 동의하지 않는 성행위를 강제로 하고, 가게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성노동자라면 일부러 면박을 주고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집결지에 남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는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이 모든 걸 오롯이 감내해야만 일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손님을 10명 정도 받는데 9명은 콘돔을 끼지 않고 1명만 콘돔을 낍니다. 그 콘돔 낀 1명은 착한 게 아니라 제가 사정사정하니 겨우 콘돔을 끼워줬습니다. 그리고 콘돔을 끼지 않는 9명 중 1명은 오빠 제가 지금 피임약을 먹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밖에다 싸주셔야 해요. 라는 저의 부탁을 가볍게 무시하고 아 미안 안에 싸버렸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 손님에게 뭐라 한다거나 표정을 구기면 마담 이모에게 혼나기 때문에 웃으면서 괜찮으니 다음에 또 오라고 합니다.
집결지에선 사전 피임약을 장기간 복용합니다. 21일 동안 먹고 7일 쉬고 또 먹고. 21알 동안 먹고 7일 쉬고 또 먹고. 이게 몇 년 이상 이어지면 건강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피임약을 꾸준히 챙겨 먹기 어려운 언니들은 자궁 내 피임기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피임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자꾸 시간을 놓쳐서 계산과 달리 생리가 터져버렸습니다. 업주는 일을 시작할 때 저에게 생리하면 2~3일 정도 휴일을 준다고 하길래 저는 7일을 한다고 말씀드리니 그럼 그때 상의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업주에게 연락했더니 일단 가게에 나오라고 하더라구요. 출근했더니 질 안에 솜 2개를 물 묻혀 동그랗게 말아 넣어 그렇게 생리를 막아서 일하라고 시켰습니다. 2019년인데요.
집결지 성노동자들은 보통 주 5일 기본으로 일하고 한 달 중 4일만 쉬고 26일 동안 일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루 노동시간은 성노동자마다 제각각입니다. 가게 문을 9시에 열어 원래는 10시간 정도 일합니다. 그런데 제각각이라 말한 건 퇴근 시간에 손님이 와서 장시간(타임을 길게 끊음)을 끊는 경우가 있고 긴 밤(영업시간 내내 초이스 한 손님과 같이 있는 것)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시간을 끊는 경우 그 손님이 몇 시간을 끊냐에 따라 노동시간도 같이 변합니다. 저는 하루 18시간 일해본 적 있는데 다른 언니는 2~3일 연속으로 쉬지 못하고 일한 적도 있다고 해요. 장시간 노동을 하고 다음 날에 쉴 수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업주는 나오라고 대개 눈치를 주는 편이에요. 장시간 노동, 지속적인 손님의 강간, 아파도 휴일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인권유린이고 노동 착취임이 분명한데 여기 일하는 모두가 이런 일에 익숙하고 이 공간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서글픕니다. 제가 여기서 저의 권리를 찾는 게 잘못된 것처럼 느껴져요. 권리란 건 이곳에서 처음부터 찾을 수 없는 것이었을까요. 포기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맞서 싸워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에는 천호동 텍사스가 사라지고 천호동에 있던 언니들이 미아리로 많이 넘어왔대요. 서울에 있는 집결지는 이제 영등포와 미아리 두 곳이 남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집결지가 사라지면 거기서 일하는 성노동자도 탈성매매를 할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조례 지원이 있어도 그 지원은 부족하기 짝이 없고 모든 집결지 성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집결지가 사라지면 다른 집결지를 찾아 지역을 옮기고 옮기고 또 옮겨 다녀요. 종삼이 해체됐을 때 다른 지역 집결지로 언니들이 흩어졌고 청량리가 사라졌을 때 천호동으로 언니들이 넘어갔으며 지금은 또 천호동이 사라지니 미아리로 언니들이 모였습니다. 이제 슬슬 미아리에 있는 언니들도 짐 쌀 준비를 하겠지요.
명절이 되면 언니들은 시댁이나 친정에 다녀옵니다. 그래서 명절날에 일하는 언니들이 생각보다 많이 없어요. 이건 집결지 성노동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노동으로 가정을 부양하고 있단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탈성매매의 대상이 되는 집결지 성노동자들은 탈성매매가 쉽지 않습니다. 오래 일한 집결지 환경이 익숙해서 다른 일을 하기 어렵기도 하고, 마이킹(선불금)이 묶여있는 언니도 있고,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데 이곳을 나가면 지금처럼 돈벌이가 쉽지 않기도 하고, 탈성매매 후 사회에 나가면 이미 경력단절이 되어있죠.
가끔 여성단체에서는 집결지 아웃리치(거리상담)를 나옵니다. 탈성매매 유도를 목적으로 단체를 소개하고 물품을 전달해주고 가요. 이게 얼마나 효과 있는지를 떠나 탈성매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현재로서 그나마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까요. 이런 탈성매매 유도도 있는가 하면 개중에는 성노동자를 너무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희에게 왜 탈성매매를 하지 않냐, 알바천국에서 정상적인 일자리를 찾아 '정상성'에 편입되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정상성이란 무엇인지, 퇴근하고 자고 일어났더니 왜 제가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어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성노동이란 '비정상' 카테고리에 들어간 저는 사람들이 저를 어딘가 모자라고 위험에 빠진 불쌍한 사람으로 인식하더니 성매매를 관두고 콜센터나 공장에서 일하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싫다고 하니 결국 넌 공장보다 성매매가 좋은 거잖아 여성 인권 떨어트리는 창년아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맞다. 캐해석 성공하셨습니다. 여성 인권 떨어지는 건 제 알 바가 아니므로 공장보다 성매매가 더 좋은 게 당연하지요. 저는 가난해서 돈이 없고 돈이 없기 때문에 건강과 시간을 모조리 국가에 빼앗겼습니다. 박탈당한 것을 얻기 위해 남들처럼 공부도 하고 알바도 했지만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저에게 돈과 건강과 시간은 주어지지 않더라구요. 정상성에 편입하려 하면 할수록 모든 걸 잃어갔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건 이런 자원들을 그냥 쉽게 얻을 수 있는 위치와 죽도록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위치가 있구나. 그리고 제가 후자에 있단 걸 깨닫고 억울해져서 하던 노력을 모두 그만뒀습니다.
최저임금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런 사람들이 대체 어디 있냐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애인이 그렇고 빈곤층이 그렇습니다. 한국엔 아직도 정신/신체장애인은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조항이 있으며 2인 가구가 한 달에 약 80만 원을 넘는 금액이 통장에 액수로 찍히면 기초생활수급비를 끊어버려 불이익을 주는 복지가 아직도 존재합니다. 최저임금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은 점점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 배치되고 착취당하게 됩니다. 일부러 월급을 안 주는 사장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두 달인가 석 달 치 월급이 밀려 사정사정해 빌었지만 결국 받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노동청에 신고했겠지. 우리는 노동청에 신고해봤자 계약서도 안 쓰고 몰래 일한 거라 운 좋게 신고 먹혀도 수급비 잘릴 텐데. 신고의 기회조차 공평히 주어지지 않음은 정상적인 일을 더 이상할 수 없게 했습니다. 탈성매매 권유를 해도 말 안 듣는 괘씸한 년을 단죄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이런 삶이 있단 건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겠지. 정상성에 편입될 수 없는 사람을 아무리 머리채 잡고 끌고 와도 결국 이탈하게 된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나 봅니다. 탈성매매란 선택지가 없는 사람들에게 탈성매매 권유를 하는 것. 성매매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 발화. 너를 위한 조언이랍시고 뱉어대지만 정작 당사자인 저는 그 말들이 몸서리칠 정도로 끔찍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건 경험했던 비인권적인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성노동자에게 시혜적이고 동정 섞인 관심을 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탈성매매를 도와달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구요. 이제는 인권 침해가 당연하듯 이루어지는 성 업에 대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다 같이 이야기해 봤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이 의제에 대해 관심을 두고, 사라져가는 집결지라는 공간에 대해 고민해주시길, 집결지 성노동자들과 새로운 이름의 관계 맺기를 실천하여 이곳에서 폭력과 착취를 일삼는 사람들을 감시해주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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