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19 성노동 프로젝트 제 1회 성노동 글쓰기

[2019 성노동 프로젝트 제 1회] 희망 : 뱀에게 내어 준 발목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19. 9. 15. 17:55

뱀에게 내어 준 발목

희망


 

새벽 3시 35분, 숙취에 머리를 싸매며 자판을 두드린다.

가끔은 지금의 시간과 공간에 갇혀있는 기분이 들고, 그리하여 어딘가 시비를 걸고 싶은 건지 진정한 사랑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말이 굉장히 와 닿아, 아스라이 빛나는 사랑 주위를 거니는 행복 또한 실재하는지가 궁금하다. ‘행-복-.’ 성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나에게 행복이란 살아가기 위한 성-노동 적 행위와 공유되지 않는 미지의 세계인가? 어떠한 노선과 선택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행복인가? 강렬한 충만감과 편안함, 안전성, 사회적 소속감, 자가 발전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잔잔히 흐르는 전류로 치환해 느끼는 순간을 우리는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내가 성노동자로서의 시간을 지내오며 찌르르한 행복감을 느꼈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타인이자 동시에 무한한 본인으로 존재하기에 거울을 마주 보듯이 겪어온 삶의 공통점이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당신들 마음에 금방 후크를 걸어서 깊숙이 끌어당겼다고 놀라지 않아도 된다.

도입 전의 이야기로,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떠벌리는 것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사건의 내용이 미화되거나 물화되어 누군가의 날카로운 도구로써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에는 정치적인 힘이 실리고 사회적인 영향력이 더해지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글을 볼까 싶지만은, 그저 성 노동에 대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 글을 써 내려가려 하는 것임을 당부해둔다.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얘기할 것이며 대부분이 나의 이야기이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여러분들이 생각으로 빚어낸 성노동자의 모습은 어떠한가?

성-노동하면 생각나는 것. 개인의 삶에서 나아가 여성 인권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생각날 것이다. 포주에게 강간당하고, 피임에 실패해 임신 후 낙태를 하거나 성병에 걸려서 고생하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살까지 하는 경우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인권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길 바란다. 보통 사람들이 끔찍해하는 지점은 돈으로 권력을 산 타인과 신체접촉 후 성관계를 하는 비순수성 혹은 문란함에 있는 듯도 한데, 이로 인해 첫 번째로 성-노동을 하는 개인에게 생길 수 있는 문제 혹은 위험에 대한 비판은 화제성 뒤로 사라지며, 두 번째는 노동자의 환경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문제와 위험을 가지고 앞서 언급했던 비순수성과 문란함의 요소들과 엮어서 성-노동자를 비난하는 흐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권력이 되지 못할지라도 외모가 수려한 경우 주변의 태도와 삶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사회적 위치까지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빼어난 외모 외에도 돈을 많이 버는 경우,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에 대해 대가를 지불할 수 있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타인보다 다양한 경험을 사고 겪어볼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죽어도 하지 않을 비인간적이고 불법적인 일을 타인이 기꺼이 행함으로써 자신보다 앞질러 갈 수 있다는 이유로 성-노동자를 혐오한다. 이런 어쩔 수 없는 조건 때문에 성-노동이라는 분야는 그 뒤에서 이루어지는 노력 혹은 겪게 되는 부당함, 성-노동을 시작하기 이전의 상황으로 인해 개인이 욕망을 가지고 움직이게 된 이야기마저 지워진 채 혐오성 가득한 시선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가장 간과되는 점은 성-노동자의 삶이다. 한 인격체로서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경험들은 충분히 다듬어질 수 있는 원석으로서 빛나지 못하고 감춰지고 숨겨지기 급급해 안타깝다. 실생활에서는 꺼내지 못하는 성-노동자로서 행복을 느끼는 부분을 들려주려고 한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작거나 크고의 크기에 상관없이 행복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스스로 세워 둔 기준이 필요하다. 예전의 나는 경제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위치해있는 모습 그대로를 털어놓으면 타인과 이해받고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허나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계급은 바늘 끝처럼 서늘하고 분명하게 존재했으며, 몇 번 타인에게 솔직한 경제력을 비추어 본 결과 돌아오는 싸늘한 반응과 무시에 종국에는 가난한 처지를 죄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간식거리에 들어가는 돈이 아까운 것에서 나중에는 먹는 것과 식욕을 느끼는 것에 대해 위태로운 삶을 위협하는 불쾌한 것으로 인식했으며, 잘 먹지 않으니 식습관이 체력과 직결되어 건강함도 잃어갔다. 최근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고부터는 음식을 섭취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고, 헬스 PT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성-노동의 뜻밖의 장점은 노동 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출근이 개인 의사에 따라 강제적이지 않고 자유롭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많은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꾸준히 운동을 다니면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음을 느낀다. 양날의 검인 것은 이 일을 하면 술 업종의 경우 술로 인해 건강을 망칠 수도 있다는 점인데, 개인의 재량으로 편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음과 없음이 크게 나누어지기에 성-노동은 항상 모호한 비판의 경계에 서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경계에서 줄타기를 아슬아슬하다가, 요즘 들어서 행복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 많아졌다. 가족에게서 벗어난 혼자만의 공간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일자리, 이전에는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자기 계발의 경험들이 차곡차곡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끊임없이 외모로 비교되고 평가당하는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외모 관리에 많은 돈을 쏟아붓게 된다. 이 함정에 허우적대지 않고 과한 지출로서가 아닌 꾸준한 정도의 관리로만 자금을 사용하고 충분히 모은다면, 성-노동은 충분히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본다. 성-노동자들끼리의 목표금액 공유와 갖가지 자기 계발 등의 정보를 공유하여, 노동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인권침해 혹은 성적 착취에 노련한 대처와 방법 모색으로 부당한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다시 한번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칼이나 불이 쓰임새에 따라서 생명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처럼, 성-노동도 수단으로써 공정하게 비판되어야 하며 개인마다 다른 환경을 고려하여 다가갈 필요가 있다. 알아주었으면 하는 점은, 성 노동도 다른 노동과 똑같은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돈 버는 일은 더럽다. 공장이나 콜센터 등 언제든 교체되고 더 이상 배움이 없이 반복적인 역할을 맡는 일을 했을 때 미래가 없다는 사실에 무척 괴로웠다. 오히려 성-노동을 하는 지금, 사람들이 더럽다고 얘기하는 일을 하면서 매일 설레며 눈을 뜨고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당신에게 성 노동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받고 싶지 않고, 해보라고 권하고 싶지도 않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이 성 노동을 시작했다가 “이런 일을 겪고도 다른 사람들은 멀쩡할 수 있다고요? 다들 그저 견디는 건가요?”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홀연히 일을 관두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당신이 겪지 않아도 된다면 굳이 고통스러운 삶을 잠시라도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성 노동은 일로서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칠흑 같은 암흑을 인도하는 것은 작은 별인 것처럼 아마 수많은 고통과 고통인 것처럼 보이는 것 속에 있는 것은 영원성을 지닌 한 줄기 희망일 것이다. 어린 왕자가 스스로의 별에 돌아가기 위해서 뱀에게 발목을 내어주는 것을 택한 것을 어렸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죽음을 대가로 가벼운 육체가 되었을 때 비로써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성-노동을 하며 노동의 대가를 치르면서 많은 것을 시도해 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겹쳐 보인다. 물론 뱀에게 물린 자리의 발목이 아프기도 하며 숨이 가빠서 다 내려놓고 싶어지는 순간들도 많아, 이렇게 생겨난 불행들을 억지로 행복하다고 긍정하며 덮어버리고 싶지도 않다. 그저 다가오는 행복들을 맞이할 준비를 되는 데까지 해 보고 싶다. 내가 성-노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해 왔던 것은 노력이 동반된 노동이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하고 싶은 꿈을 찾아서 멀리 떠나왔던 행성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