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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문 공유] <약자생존> 약한, 아픈, 미친 사람들의 광장 : 해수(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 10. 6. 11:55

 

약자생존 : 약한, 아픈, 미친 사람들의 광장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해수

 

안녕하십니까!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에서 연대하며 활동하고 있는 해수입니다. 미쳐버린, 혹은 미칠 수밖에 없는 여자들을 아끼는 이 단체의 일원으로서, 비정상으로 밀쳐진 모든 존재를 한데 모아 놀아보겠다는 <약자생존> 기획진의 포부가 무엇보다도 따뜻한 환대로 들립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지긋지긋한 팬데믹은 한국의 인권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탈시설 운동의 의미를 증빙하듯 장애인거주시설의 무려 70%에서 집단 감염이 이루어졌고, 복지부는 그중 단 한군데에만 코로나 대응 지원금을 보냈습니다. 퀴어는 또 다시 감염의 매개로서 호명되었으며, 성매매를 감염의 경로로 지목하여 유흥업소를 닫으라는 여론이 이어졌습니다. 한국 남자들이 코로나 시국에도 성매매를 너무 많이 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한국 남자를 콕 찝어 단속했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이런 주장을 듣자하니 마치 지켜야할시민이라는 울타리 안에 성노동자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성노동자들은 이처럼 자기 존재와 노동의 법적, 윤리적 당위성을 이유로 꾸준히 외면당합니다.

사람을 아프고 미치게 하는 다양한 요인 중 하나는 불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성노동자는 계속해서 불법성 혹은 법에서의 제외를 경험합니다. 이를테면 국가에서 제공하는 대부분의 복지에서 배제됩니다. 남성들의 필요로 인해 유흥업소를 합법으로 지정했음에도, 합법 유흥업소 종사자조차 거의 불법 노동자로서 다뤄집니다. 4대 보험도 잘 보장되지 않고 산업재해 보상도 물론 받지 못하죠. 갑작스레 해고를 당해도 해고예고수당을 받을 수 없고, 구인구직 노력이 인정되지 않으니 실업급여를 받으며 일자리를 물색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흔한 저금리 대출마저 재직 증명서를 요구하므로, 성노동자들은 국가나 제1금융권의 대출로부터 완전히 소외되고, 자연스럽게 사채나 제3금융권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들이 일하는 건물은 또 어떻습니까. 노후화된 건물을 불법 개조하여 만든 업소들은 항상 화재 위험 속에 놓여있습니다. 성노동자들은 불법으로 간주되는 노동의 대가로 불법적인 공간에서 노동하며 살아가고, 이 불법의 연쇄 고리가 많은 성노동자를 죽음의 길로 내몰곤 합니다.

이렇게 성노동자들은 불법성의 볼모가 되어 폭력에 더욱 취약해집니다. 이를테면 성노동자가 성구매자로부터 폭행이나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누가 미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존엄의 훼손은 단순히 성구매자 남자들과의 성적인 서비스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지원받고, 인정받고, 가치 있는 대우를 받을 자격을 계속해서 증명해야 하는, 혹은 증명할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것으로부터 기인합니다. 비참함은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선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지키고자 하지만 도무지 적절한 의존과 돌봄을 강구할 수 없을 때, 그 고립 속에서 발생합니다. 그뿐인가요, 성노동자가 피해자 서사를 벗어나 일말의 주체성을 드러내기라도 하는 순간, ‘범죄자일뿐 아니라 문란하고’ ‘정신 나간사람으로 낙인 찍힙니다. 그러니 성노동 하는 여자들은 이미 미쳤거나 앞으로 미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국가와 사회는 여태 성노동자 여성의 권리를 논할 때 불법성과 낙인이 성노동자에게 씌우는 숨막히는 무게보다는 성노동자체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방식으로 이 개개인의 여성들을 교정하고 구원하고 자활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성노동을 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서 성노동을 합니다. 성노동이 폭력이 맞다해도,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노력해서 스스로를 바꾸고 폭력을 그만 당하라고 하는 요구가 말이나 되는 걸까요? 성노동을 그만둬야 건강하고 좋은삶을 사는 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참 곤혹스럽습니다. ‘정상인의 삶이 정말 건강하고 좋은지부터가 의심스럽지만, 일단은 이 질문까지만 하겠습니다. 건강하지 못하고 좋은 삶을 살지 못하고 비정상으로 밀려나는 이유가 정말 성노동을 하기 때문인 걸까요? 어쩌면, 어떤 성노동자들은 이미 비정상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성노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혹은 멀쩡한 성노동자를 우리 사회가 비정상이 될 때까지 몰아붙이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저희는 낙인, 동정심, 그리고 단죄가 빠진 시각으로 접근했을 때 이 여자들의 몸과 삶에서 읽을 수 있게 될 이야기들이 궁금합니다. 여느 다른 노동과 같이 성노동도 특수한 직업병들을 동반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이미 몸이 아팠거나, 모종의 이유로 표준적인 노동 시간에 근무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성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성병이나 트라우마의 영역을 제외하고는 성노동자의 몸에 대해서 논의된 점이 너무도 적습니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재개발을 통한 성매매 집결지 폐쇄가 발생했지만, 가난한 여성들이 또 한 번 거주지에서 쫓겨났을 뿐입니다. 집결지 성노동자들은 다른 업소로 흩어졌고, 성매매는 사라지기는커녕 변종 업소나 온라인 알선의 형태로 변주되고 확장되고 있습니다. 업주 개인과 성구매자를 처벌하는 정도로는 수습할 수 없는 성노동자들의 취약성과 고립을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여자의 몸을 가졌기 때문에, 빈곤하기 때문에, 여러 구조적 문제로 인해 성노동자가 계속해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사회라면 성노동자를 제거하려 들 것이 아니라 성노동자를 만드는 가부장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사회를 뒤집어 엎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진정으로 성노동자를 살리는 길입니다.

차차는 성노동자가 잠정적으로 나아질’, 비정상과 결핍의 존재로 여겨지지 않고, 어느 위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기를, 언제나 존중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성노동자를 규범에 포섭하려고 하기보다는, 성노동자가 선 현재의 박탈된자리에서 이 사회의 다른 비정상적인 존재들과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개인의 삶에 무례하게 굴지 말고, 구조를 부수기 위해 함께 싸우자고 외치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일구어낼 수 있는 모든 새로운 언어들에, 그 미래에 가슴이 뜁니다. 오늘 다 같이 즐겁고 충전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