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 활동 소식/발언문

[발언문 공유] 글로벌락다운 3주년 1001 동물권리장전 행진 : 여름(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 10. 6. 12:02

출처 : 직접행동DxE - Direct Action Everywhere Korea 페이스북 페이지

 

글로벌락다운 3주년 1001 동물권리장전 행진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여름

 

안녕하세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여름입니다. 동물권리장전 행진에서 여러분을 만나게되어 반갑습니다.

차차는 성노동자 당사자 중심 단체로, 주홍글씨로 낙인찍힌 모든 성노동자를 위해 ''별과 낙인을 ''근 차근 없애 나가기 위한 활동을 합니다. 여기까지 들으신 분들 중에 성노동자가 왜 동물권리장전 행진에 왔는지 궁금한 분들도 있으실텐데요. 성노동자 해방은 비인간동물 해방과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2019104일 세계 동물의 날, 한국에서 네 명의 직접행동 DxE 활동가들이 약 200kg 콘크리트에 몸을 결박하여 경기도의 한 도계장 입구를 가로막아 닭 9천여 마리를 태운 트럭을 세웠습니다. 활동가들은 왜 이런 위험천만한 짓을 목숨 걸고 한 걸까요? 아마 활동가들이 이 아니라 사람을 구했다고 세상에 알려졌다면, DxE 활동가들은 영웅이라 불렸을 겁니다. 죽으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을 구조하려 해서 활동가들은 영웅이 아니라 위법행위를 했다고 비난받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을 죽여서 이윤을 취하는건 불법이지만, 닭을 비롯한 비인간동물을 죽여서 돈을 버는 육식산업은 합법입니다. 그래서 활동가들은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208, 수원지법에서 각 3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상황이 비인간동물이 마주한 현실이자, 극심한 종차별주의의 민낯입니다.

염운옥 선생님은 <낙인찍힌 몸>에서 인종주의는 차이를 인지하고 타자의 행위가 아니라 속성에 근거해 분류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염운옥 선생님의 말을 빌려 종차별주의도 의 차이를 근거로 한 분류의 욕망에서 시작된다 말하고 싶습니다. 종차별주의는 동물동물이라 호명하고, 인간과 분류해서 열등한 존재라 정의하고, 값을 매기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요? ‘의 차이를 근거 삼아 어떤 존재는 이런식으로 대우해도 된다는 믿음 말이에요. 여성, 장애인, 퀴어, 성노동자, 홈리스, 청소년, 아픈 사람, 이주민정상사회가 구분 지어 비정상이라 호명하던 몸들, 역사적 맥락에서 차별과 억압을 감내하던 수많은 몸들이 떠오릅니다. 저는 DxE 활동가들의 모두가 해방되지 않으면 아무도 해방될 수 없다는 구호를 참 좋아하는데요. 앞선 구호처럼, 성노동자 해방을 비롯한 수많은 사회 운동과 동물 해방은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죽어도 된다고 여겨지던 몸들이 죽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싸움이니까요. 우리 중 누구라도 소외된다면 해방이 멀게 느껴질 겁니다.

동물과 성노동자 억압은 여성화된 신체의 자본주의적 활용에 근간을 둡니다. 지배계급에 의해 성노동자는 자본을 버는 수단으로 여겨졌고, 약물로 생리를 조절하거나 비자발적인 임신중지를 했습니다. 성노동자가 생리 중이거나 임출산을 할 경우, 노동하기 어려운 조건이라 사업장에 거대한 손실을 주는 걸로 취급됐습니다. 이런 시선에서 자연스레 성노동자의 재생산권은 통제당했습니다. 여성-비인간동물은 재생산되는 몸이어야 당장 도살당하지 않습니다. 공장식 축산업이 유지되는 과정에서 여성-비인간동물들은 끊임없이 임신과 출산을 강요당하며, 또 다른 '재생산'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빼앗깁니다. 비인간동물도 자본을 버는 수단으로써 임출산을 강요당하고, 자본을 벌어들이지 못하면 도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만약 동물과 성노동자의 여성화된 재생산 능력이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면, 육식산업과 성산업이 이토록 크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통제와 착취는 자본주의 위에서 성립됩니다. 성노동자 권리 운동과 동물권 운동이 자본주의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DxE 활동가들은 모든 동물을 위한 기본적인 권리 선언을 했습니다. ‘고통과 착취의 상황에서 구조될 권리, 보호받는 집, 서식지, 또는 생태계를 가질 권리, 법정에서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법에 따라 보호받을 권리, 인간들에게 이용·학대·살해당하지 않을 권리, 소유되지 않고 자유로워질 권리…’ 가장 기본적이고 절실한 요구를 담은 선언문입니다. 또한, 활동가들이 비인간동물의 죽음을 방관하는 세계를 목격하고 느낀 절망과 분노 앞에 싸우겠다는 의지이자, 우리를 버리고 가는 세계를 붙잡아보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버리고 먼저 앞질러가는 세계, 밉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사회운동이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수용해 준다 해도 이미 너무 늦었죠. 이미 늦었지만, 성노동자에게 죽어도 된다고 했던 사람도, ‘창녀라고 비웃던 사람도, 노동착취를 일삼는 업주도, 육식산업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어제 식탁에서 동물을 먹은 사람도 저희는 단 한 명도 버리지 않고 평등의 세계로 데려가버리려 합니다. 이 사람들도 제가 참 짜증 나겠죠? 차별하는 게 더 재밌어서 평등의 세계로 오지 않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데려갑시다. 차별보다 평등이 더 좋은 것이란 걸 알려줍시다. 차별의 세계에 어느 누구도 내버려두지 맙시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그런 거잖아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DxE 활동가들의 재판을 계류중인 대법원에게 요구합니다. 대법원은 평등의 세계를 우리에게 약속해 주세요. 이 평등의 세계는 지금까지 환대 받지 못한 비인간동물들도 포함하는 세계입니다. 시멘트에 몸을 결박하고 9천 여마리 병아리의 죽음을 잠시라도 유예시켰던 DxE 활동가들의 용기에 응답해주세요. 종차별주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정의를 보여주세요. 비인간동물들이 죽지 않는 세계로 가자는 DxE 활동가들의 목소리는, 모든 존재가 죽지 않는 세계로 가자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이들의 목소리가 사회정의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