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한국 성노동자의 날 집회/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발언문 공유]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 유원(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3. 8. 23. 05:53

photo by. 우프 홍지영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유원(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안녕하세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유원입니다. 차차는 주홍글씨로 낙인찍힌 모든 성노동자를 위해 차별과 낙인을 차근차근 없애 나가는 당사자 중심 모임입니다. 개인 조건, 유흥업소, 기타업종 등에서 일했거나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성노동자 인권 운동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용주골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 상황을 규탄하기 위해 여러분과 힘을 합쳐 싸우는 중입니다.

차차가 성노동, 성노동자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성노동도 일이고 성노동하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차차는 우리가 매일 힘내서 먹고살고 있는 이 현장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을 너무 하고 싶어서, 출근이 너무 좋아서 일하는 노동자는 드물 것 같습니다. 특히 성노동은 쉽지 않은 면이 많은 노동입니다. 차차 활동가들은 성노동을 하면서 종종 힘들고 억울한 경험을 했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그리고 사회적으로 안 좋은 시선을 받는 불법적인 육체노동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손님이 진상이라서, 가게에서 어려운 요구를 해서, 내가 뭘 잘 몰라서 부당한 취급을 받을 때도 있었고, 범죄 피해자가 되거나 몸이 아프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 속 시원하게 대처할 수가 없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위험부담이 크고, 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제도도 없으니까요.

이러한 성노동 현장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폭력과 착취에 맞서기 위한 실천이 차차의 운동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혹시 평생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분이 계신 가요? 그럴 수 없어서 투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동을 강제당하는 우리의 삶에서 노동권은 인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노동이 성을 착취하기 때문에 노동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중요한 일부를 착취당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권리를, 노동권을 박탈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회사에 의해 착취당해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합법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여전히 건재한 것처럼 말입니다.

차차는 법률상담이 필요한 성노동자분들에게 상담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일하다가 협박, 사기, 성폭력 피해를 겪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해 주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다 내 잘못인 것 같다고요. 성매매를 한 것도, 술에 취했던 것도, 다 내 잘못인 것만 같다고요. 잘못한 놈은 따로 있는데, 그놈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그때 내 상황을 잘 이해받지 못하니까 자책을 하게 되는 겁니다. 심지어 “그런 일을 하는 여자는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가해자를 면책해 주는 차별적인 인식이 있기에 아무 잘못 없는 피해자가 계속 스스로를 비난하고, 검열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성노동을 하다가 겪는 피해는 성노동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 피해를 겪게 한 가해자의 잘못입니다. 누가 성매매를 했다고, 술에 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일방적으로 자기의 이익에 따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 폭력을 가해도 되고, 착취해도 되는,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어떤 직업을 가졌든 누구나 평등하고,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하는 순간에도 남이 빼앗아 갈 수 없는, 남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노동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존엄할 수 있습니다. 성노동자도 사람이니까요.

저는 계속 성노동자가 가지는 권리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이런 권리가 없는 것처럼 구는 파주시 때문입니다. 파주시는 용주골 종사자들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습니다. 다시는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는 탈성매매 확약서를 쓰고 복지 제도의 관리를 받으며 살아가는 성매매 피해자가 될 것인가, 불법 성매매를 그만두지 않는 범죄자인 상태로 쫓겨날 것인가.

성노동자인 우리의 삶을 어떻게 피해자나 범죄자 둘 중 하나로 욱여넣을 수가 있겠습니까.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해도 항상 피해자이기만 할 수 없고, 성매매 특별법상 불법 행위자라고는 하나 사실상 국가의 편의에 따라 양태가 조절되고 있는 여자들 아닙니까? 여자가 필요할 때는 눈감아 주고, 필요 없을 때는 근절하려 하는 이중 잣대 속에서 우리를 구매하는 남자와 단속하고 처벌하는 남자는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경찰,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가 우리를 구매하는 동시에 단속하고 처벌합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범죄자란 말입니까?

게다가 용주골은 기지촌의 번영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성매매 집결지입니다. 한국 정부가 미군을 위한 성매매 업소를 조성하고, 관리하지 않았다면 파주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성매매 집결지가 생길 이유가 없습니다. 성매매가 죄라면 그 범인은 국가입니다. 용주골에 흘러 들어와 일하게 된 종사자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사죄하며 배상해야 할 시민들이기도 합니다.

파주시장은 “여성인권을 위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용주골에서 먹고사는 여성들과 단 한 번도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당사자들을 무시한 채 1년이라는 촉박한 기간을 잡고 집결지 폐쇄를 강행하는 폭력적인 행정은 용주골 종사자들의 인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종사자들 없이 깨끗하게 비워낸 용주골 땅을 재개발하기 위한 무리수에 가깝습니다. 아직 용주골에 남아 계신 분들 중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1년 만에 나가라는 요구가 부당하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종사자분들께서 거듭 말씀하셨듯이, 용주골에서 영원히 일하고 싶다는 게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각자의 상황과 사정이 있어서 여기에 머물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파주시가 제시하는 틀에는 들어맞지 않는 개개인의 상황과 사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용주골을 취재한 BBC 영상에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여자로서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할 때는 인생의 우여곡절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혼자 고생했던 시간에,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밤을 슬픔과 고통 속에서 버텨 왔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노력했고, 가장 오래 고민했습니다. 어떻게든 일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를 미워하면서도 때로는 일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습니다. 나를 살리고, 내 자식들을 기르고, 아픈 가족을 돌볼 수 있게 한 스스로에게 긍지를 느낄 때도 있습니다. 가끔 너무 싫을 때도 있지만 조금은 사랑하는 우리의 삶, 우리의 일. 그렇게 살아야 했다는 사실이 그 누구에게도 하나도 죄송하지 않습니다.

성노동자의 날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