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한국 성노동자의 날 집회/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발언문 공유]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 희음(멸종반란 /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3. 8. 23. 05:58

photo by. 우프 성재윤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누가 나를, 우리를

희음(멸종반란 /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

 

선아는 오늘 아버지의 두꺼운 손이 언젠가의 하나님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도를 가르친 적 없는데 그 기도가 틀렸다고 불 한가운데로 내던지시는 하나님. 손자국이 뒤덮인 끈질긴 몸으로 선아는 도망쳤습니다. 기도도 가족도 없는 곳에서 선아는 다시 시작했습니다. 밥이 있고 화채가 있고 언니들이 있는 곳. 누구도 누구를 함부로 구원하려 들지 않는 곳. 사랑은 몰라도 멸시와 천대와 내동댕이가 무언지는 너무 많이 알아버린 사람들이 마른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곳. 이곳에서 선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인 채로도 두 번 세 번 살아진다고 자꾸 중얼거립니다.

현수는 어릴 적부터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건 대개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이었는데 어른들은 웃어 넘기기 바빴습니다. 그런 어른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하자 현수는 열심히 살고 싶지가 않아졌습니다. 눈만 뜨면 놀고 또 놀았습니다. 너무 놀다 보니 무엇도 새로 시작하기엔 늦은 때가 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도 현수의 서툴고 가난한 출발을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현수는 출발 없이 도착했습니다. 출발 없이 도착할 수 있는 곳은 비탈지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가졌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이유로 먼저 도착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원하고 마을이 원하고 가족이 원하고 애인이 원해서, 굶주린 배가 원하고 목숨이 원해서. 이런 이유로 그들은 이곳에 왔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 옆에 있다 보면 현수는 웅크리고 있을 때도 피가 도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찾지 못했던 대답이 여기에 고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선아는, 현수는, 우리들은 발그레한 뺨으로 밥을 먹고 웃고 울고 땀 흘리며 일하고 욕하고 인사하며 살았는데요, 어느 날 어떤 창백하고 낯익은 얼굴들이 몰려와 그게 다 가짜라 말합니다. 이 집도, 이 삶도 다 틀렸다고 합니다. 또 다시 나라와 마을과 가족과 애인의 이름표를 달고서 선한 얼굴로, 이번에는 여기서 나가라고 합니다.

이봐요, 대체 여기란 어딥니까. 이 집과 이 삶을 말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말입니다. 내 집에서 누가 나를 나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내 삶에서 누가 나를 나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