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한국 성노동자의 날 집회/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발언문 공유]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3. 8. 23. 05:55

photo by. 우프 황아림

 

2023 한국 성노동자의 날 <우리의 일, 우리의 삶 : 성노동자의 생존은 폐쇄될 수도 철거될 수도 없다>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안녕하세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에서 활동하는 나영입니다. 원래 오늘 오전에 다른 일정이 있었는데 그 일정이 취소되어서 이것은 신의 계시다 생각하고 집회에 왔습니다.

지난 기자회견 때 셰어에 너무 많은 댓글이 달려서 괜찮냐고 걱정하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오히려 저희는 정말 괜찮았고, 그 일이 셰어에게도 얼마나 중요한 계기가 되고 용기가 되었는지를 얘기하고 싶어서 오늘 오픈마이크 발언도 신청했습니다.

저는 그 때의 일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일단 첫번째로는, 차차는 화력이 세다. 차차에서 셰어 홈페이지에 비판 댓글이 너무 많이 달리고 있다고 sns에 알리시고 나서 정말 많은 분들이 더 많은 응원과 연대의 댓글을 남기러 오셨거든요.

덕분에 무플보다 악플이라고, 셰어 홈페이지가 중요한 토론의 장, 교육의 장이 된 것 같아서 영광이었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 셰어보다 차차가 더 관심을 받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는 차차를 더 욕해주세요.

아무튼 사실 비판하는 댓글은 한 페이지 정도고, 그 뒤로 두세 페이지 정도가 용주골 성노동자 분들의 투쟁이 어떤 투쟁인지, 왜 중요한지, 재개발을 위한 강제적인 집결지 폐쇄 조치가 이곳에서 일해온 성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무시하고 더 생계를 위협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글이었는데요, 저도 댓글을 보면서 중요한 고민들을 많이 가지게 되었고 동시에 더 열심히 잘 연대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싸우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자신이 믿어왔던 것들을 비로소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믿어온 걸 옹호하려고 하려고 해도 지금 싸우는 사람들이 시작한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셰어 홈페이지에 비판의 댓글을 달았던 분들도 그 뒤에 달린 많은 성노동자 분들, 용주골에서 일했거나 지금 일하고 있는 분들의 댓글을 보며 또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면서 느낀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처벌과 비난, 낙인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야기를 꺼내고 싸우기 시작했을 때, 지금까지 사회가 설정해 두었던 틀 안의 세계가 깨지고 우리가 듣고 말하는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에 임신중지한 여성을 처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겨우 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임신중지를 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슬픈 이야기만이 그나마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처벌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임신과 임신중지에 관한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낙태를 찬성하냐 반대하냐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낙태죄 폐지 투쟁의 과정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남자도 같이 처벌하면 되지 않느냐거나, 여자는 처벌하지 말고 남자를 처벌하면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남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남자를 처벌하는 것 말고 과연 무엇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를 처벌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처벌이 과연 무엇을 해결해 주느냐를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벌의 대상은 어떤 행위에 있기 때문에 이야기와 맥락에 대한 관심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해야 될 행위와 하면 벌받는 행위를 나누고, 그걸 기준으로 벌받을 사람을 벌주면 되니까 처벌을 내세우는 것은 사실 국가로서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손쉬운 방법입니다.

근데 중요한 건 그렇다고 처벌이 다 원칙대로 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그래서 처벌은 구조를 가리고, 대신 낙인과 불안을 이용합니다.

사람들의 삶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 삶에 개입하는 부정의와 차별에 관심을 두는 이들이라면, 처벌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이야기하는 대신 정말 바꿔야 할 것이 무엇이고, 그 현실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둘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면 이제부터라도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편에 서서 연대를 시작해야 합니다.

자작나무회는 싸움을 시작했고, 이미 이 세상에 균열을 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 모이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다른 이야기들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전과는 반드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파주시장은 쉽게 생각했던 일에 점점 큰 난관을 만나게 될 것이고, 앞으로 파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 어디에서든 이런 식으로 성노동자의 삶과 요구를 단순히 무시하고 덮어버리려는 시도는 쉽게 진행될 수 없을 것입니다.

싸우는 성노동자, 자작나무회 여러분 투쟁입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