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골 강제폐쇄 대응(2023~2024)

[발언문 공유] '성매매 피해자'를 "엄중한 처벌" 해달라는 파주시장, 더이상 ‘여성인권’을 이용하지 말라 기자회견 : 지혜(용주골 여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3. 11. 3. 00:03

 

'성매매 피해자'를 “엄중한 처벌“ 해달라는 파주시장, 더이상 ‘여성인권’을 이용하지 말라 

 

지혜(용주골 여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

 

성노동자에게는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창녀’나 ‘매춘부’ 같은 익숙한 멸칭도 있고, 손님이 부르는 이름들이 있고, 저 멀리서 ‘아가씨’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궂은일을 해주는 ‘성모 마리아’에 빗대 부르는 이상한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가게에서 ‘공주’나 ‘딸’이라고 불릴 때도 있고, 비슷하게 국가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달러를 벌어들이는 산업 역군’으로 치켜세워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그러는지 대뜸 “언니”라고 부르는 활동가들도 있는데, 그럴 땐 대부분 ‘성매매 피해자’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성매매 특별법에 따르면 성산업 현장에는 비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동원된 ‘피해자’가 있고,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범죄자’가 따로 있다고 합니다. 언제나 타인의 목적에 따라 결정되는 우리의 이름, 이러한 이름의 진짜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일하게 된 책임을 우리 개인에게 다 떠넘기고 싶을 때 우리는 ‘범죄자’가 됩니다. 우리를 일말의 책임조차 질 수 없는 존재로 휘두르고 싶을 때 우리는 ‘피해자’가 됩니다.

파주시가 용주골 여종사자들을 호명하기 위해 처음 고른 이름은 ‘성매매 피해자’입니다.

파주시는 용주골 여성들이 업주에게 일방적으로 감금 강탈을 당하는 ‘피해자’라고 보도하며 이들의 ‘여성인권’을 위해 집결지를 폐쇄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불쌍한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구해야 한다는 명분 뒤로 부동산, 재개발 문제와 해결되지 않은 파주 기지촌의 역사는 가려지고, 파주시의 강압적인 폐쇄 정책에 당황한 용주골 여성들의 저항은 업주의 저항으로 보도되었다가, 업주에게 조종당하는 ‘피해자’들의 무지몽매한 실수로 해석되었다가, 급기야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범죄자’들의 범죄가 되고 말았습니다.

파주시장님! 우리가 ‘피해자’인가요, ‘범죄자’인가요? 우리를 돕겠다는 건가요, 그냥 없애버리겠다는 건가요? 경찰에는 우리 ‘범죄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해 달라고 말하면서 언론에는 ‘피해자’들을 위한 조례 지원을 만들었다, 종사자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뭔가요?

2023년 1월, 파주시는 파주경찰서, 파주소방서와 TF를 구성하며 경기도 파주시 대추벌(속칭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강제 폐쇄를 선언합니다.

2023년 2월, 이재성 파주경찰서장은 “파주시와 협조해 폐쇄회로 TV(CCTV) 설치 등을 통해 성매매 알선 행위 등 강력 단속과 함께 수사팀을 보강해 불법 성매매를 근절하겠다”라고 발언했고, 3월 3일부터 4월 27일, 5월 2일, 5월 10일에 걸쳐 4번 동안 CCTV 설치를 지속적으로 시도했습니다. 이러한 설치 시도에는 약 300여 명의 경찰, 공무원, 용역이 동원됐습니다.

성매매 집결지 인근에 설치하는 CCTV는 성매매 단속을 손쉽게 하여 성노동자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입니다. 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성노동자들의 생활을 감시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용주골 여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는 자신의 생활 반경 내에 설치되는 CCTV에 반발하여 CCTV 작업 차량에 직접 올라가서 인권침해를 중단하라고 항의하거나, 작업 차량을 몸으로 막는 등의 생존권 투쟁을 벌였습니다.

파주시는 현재 해당 생존권 투쟁에 참여했던 자작나무회 여종사자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형법 제 144조 제1항), 일반교통방해죄(형법 제185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의 혐의로 고발했고, “엄벌에 처해달라”고 수사를 요청한 상태입니다.

올해 초 파주시는 ‘여성인권’을 위해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겠다고 선포하며 용주골 여종사자들을 ‘성매매 피해자’로 분류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자활 지원조례를 제정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는 ‘성매매 피해자’인 자작나무회 여종사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며 “엄중한 처벌”을 해달라고 고발까지 한 상황은, ‘성매매 피해자’라는 표현이 기만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파주시장님! 당신은 용주골 여종사자들을 단 한 번도 ‘성매매 피해자’로, 인권이 있는 존재로 대한 적 없습니다. 파주시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기 편하도록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피해자’이길 바라셨던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을 똑바로 보십시오. 더이상 ‘여성인권’과 ‘성매매 피해자’라는 단어를 이용해 용주골 여종사자들을 억압하지 마십시오.

성매매 경험 당사자를 성착취 피해자로 규정하기로 했다면, 최소한 ‘피해자’를 대하는 윤리로 우리를 대했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착취당하는 현장을 ‘여행길’ 걷기로 아무나 와서 구경하고, ‘피해자’ 집 앞에 CCTV를 설치하려 하고, ‘피해자’들을 빨리 몰아내 달라며 청소년들에게 서명을 받는 등 성노동자가 아닌 여성 ‘피해자’에겐 감히 못 할 행동을 하면서 ‘피해자’들 도와줄 테니 허접한 지원 받고 떠나라 하면 우리 ‘피해자’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지원받으면서 순순히 용주골을 떠나 주겠습니까?

우리를 정말 ‘피해자’로 본다면, 피해자에 대한 조건부 지원이 아닌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지원을 실시해야 합니다. 우리를 처벌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물었어야 합니다. 우리의 진짜 이름을 알기 위해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했어야 합니다. 우리는 ‘피해자’나 ‘범죄자’이기 전에 사람입니다. 각자의 삶이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입니다. 용주골에 사람이 있습니다.

- 성매매 집결지 인근에 CCTV 설치해서 성노동자 단속하고 사생활을 감시하려는 파주시청과 파주경찰서 규탄한다!

- 파주시청은 자작나무회 대상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집시법 위반 혐의 고소·고발 취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