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성노동프로젝트 22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코토 : 돌연변이

돌연변이 코토 “너희 이모는 우리 집안의 돌연변이야, 돌연변이.” 저 몸뚱이를 봐라, 다들 말랐는데 이모만 저리 펑퍼짐하잖니.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실존하는 사람에게 저 단어를 붙인 것도 충격이었다. 말을 내뱉은 사람이 나의 모친이고, 내가 이런 사람 아래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약간의 절망감까지 느껴졌다. 반면에 사실 조금 안도하기도 했다. 나는 통통했기 때문이다. 이모는 뚱뚱했고. 이모가 없으면 내가 타깃이 되기도 했다. 우리 집 여자들의 서열은 그렇게 정해졌다. 누가 말랐고 살쪘냐는 기준에 따라서 모욕을 하거나 칭찬을 듣곤 했다. 어른들은 피부가 하얗고 애교 있는 깡마른 여자아이가 뿅 하고 나타났으면 하는 눈치였다. “무릇 여자아이란 애교가 있어야지, 피부가 까매서 어떡하니.”라고 하거나 ..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적성 :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다니요?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다니요? 적성 “5년 후 본인의 미래를 상상해보세요.” “5년 후까지 살아있다면, 정말 5년이나 지났는데도 살아가고 있다면, 그런 미래라면 그럼 전 분명히 아주 많이 행복하게 살고 있겠죠. 5년이나 나이를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그 중엔 사랑도 있으면 좋겠네요.” 내가 올해 초 한 연구자분의 인터뷰에 답한 내용 중 일부이다. 나는 늘 나의 생존이 신기하다. 내가 살아왔음에 신기하고, 살아있음이 신기하고, 살아갈 것이 신기하고. 특히 이 인터뷰에 응할 때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올해 내 상황은 매 순간 급변했다. 그것도 꽤 긍정적인 방향이라 나조차 지금의 내 일상이 얼떨떨하다. 그래서 이번 성노동 프로젝트의..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카야 : 그래도, 의지하기

그래도, 의지하기 카야 나는 화류계 카페에서 단톡 활동을 즐겨하고, 트위터에서 장미계 활동도 꽤 하는 편이다. 처음엔 화류 커뮤니티에서 단톡방 홍보가 있을 적마다 들어가기만 했었는데, 단톡에 원래 있던 방장이 나가버려 방이 없어지는 상황을 몇 번 겪다보니 이젠 그냥 내가 방장도 맡고는 한다. 방 인원은 40명이 넘게 잘 유지되는 중이다. 내가 방장을 담당해서 사람들이 흩어지는 걸 막고, 다른 사람들은 홍보와 당사자 인증 확인을 담당했다. 주로 난 대화량 체크를 하고, 분쟁이 생기면 부방장들과 의논하기도 했다. 방장이니만큼 괜찮다 싶은 아이디어를 말하고 딱히 반론이 없으면 바로 적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단톡 공지에 댓글로 유용한 정보를 적어보자든가, 차차의 무료법률상담을 홍보한다든가 하기가 편하다. 실제..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로잉 : 여성, 가정, 그리고 성노동론

여성, 가정, 그리고 성노동론 로잉 이 글은 가정폭력에 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엄마는 어릴 적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교육 시스템이 지금보다 더 일관적이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던 시절에, 읽고, 따라 쓰고, 외우는 게 공부의 전부였던 그 시절에 엄마는 늘 우등생이었습니다. 사실, 세대가 달라졌는데도 일률적인 교육 방식에는 그닥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요. 엄마가 어쩌다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더라도 선생님들이 피식 웃으며 "네가 웬일이냐"하고 넘어갈 정도로 엄마는 학교에서 "모범 학생"이었습니다. 엄마는 학창 시절, "한번 들은 내용은 바로 외워버리는" 그런 영민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같은 나이였을 시절의 엄마에 비하면 암기력과 문해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열심 : 너무한 거 아니냐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열심 그 즈음 유흥업소는 거의 닫았다가, 잠깐 열었다가 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동선 공개 때문에 유흥업소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신상이 털리고, 언니들이 다 같이 싸잡혀서 너무 욕을 먹으니 다 같이 출근하지 말자는 여론이 주였다. 어떤 언니들은 몰래 영업하는 가게를 신고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다들 대출을 땡겼다. 잠깐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코로나 시국이 6개월이 되고, 1년이 되고, 다시 한 해를 넘기니 빚이 연체되는 언니들이 생겼고, 자살하는 언니들이 생겼다. 많은 언니들이 유흥 업종에서 다른 업종으로 떠밀렸다. 나는 평소에 주기적으로 만나던 용손이 연락이 없어서 돈이 다 떨어졌다. 당장 월세, 공과금 낼 돈이 필요한데 수중에 돈이 없으니까 마음이 초조했다. 그렇다고 적..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마리아 레인보우 : 저는 ‘성노동자’이며,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취업준비생’입니다

저는 ‘성노동자’이며,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취업준비생’입니다 마리아 레인보우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성노동자인 ‘마리아 레인보우’입니다. 원래 본명을 밝히려고 생각했으나, 아직 그런 용기는 나지 않아서 밝히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 저의 활동명이자 별명인 ‘마리아 레인보우’ 또는 ‘마리아’라고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따로 바(bar)나 룸 형태 등의 업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애인 대행이나 조건만남을 하면서 성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업소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밤 시간대에 운영해서 엄마 때문에 외출을 못 하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제가 확진이 되거나 일터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가족까지 자가격리에 들어갈까 걱정이 돼서 반 포기 상태에 있습니..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왹사리 : 우리는 결코 같은 얼굴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결코 같은 얼굴을 갖고 있지 않다 왹사리 “여성혐오의 발원지는 창녀가 아니라 창녀혐오를 만들어낸 그들의 권력인데. 여성도 창녀를 혐오한다. 그리고 여성혐오 맨 밑바닥에 창녀혐오가 있다. 나는 여성이고, 성노동을 했지만 나는 나를 혐오하지 않는다.”1) 이 문장이 세상에 공개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이 논지에 동의하지 못하는 얼굴들이 사회 곳곳에서 숨쉬고 있다. 방구석에서 끽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숨쉬고 살면 훨씬 좋을 텐데, 매번 이 성노동 프로젝트에 관심 두고 참여하게 만드는 얘깃거리를 던지며 지저분하고 추잡하게들 산다. 최근에 “여성들이 제집에서조차 ‘자기만의 방’을 위해 투쟁할 때 남성들은 온 사방에 드나들 ‘룸’을 만들었다”2) 라는 문장에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보람 : 어쨌든, 각자의 선택

어쨌든, 각자의 선택 보람 처음 업소에서 일했던 때는 2020년, 그러니까 작년 8월쯤이었다. 그전에는 계속 트위터로 조건만남만 해왔었는데, 5월에 경찰 단속에 걸리고 말았다. 처음에 모텔에 들어가 경찰 신분증을 마주했을 때는 정말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경찰은 부모님께 절대 연락하지 않을 것이며 상담 센터로 연계하기 위한 단속이라며 선심 쓰듯 말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50분 가까이 모텔방에서 대화하는 동안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몇 번이나 참아냈다. 그는 내가 다니는 대학을 묻고, 왜 그런 좋은 대학 다니는 학생이 이런 일을 하냐며 훈계조의 말을 했다. 명문대 학생증만 있으면 빚 2,500만 원이 저절로 갚아지기라도 하나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쓸데없이..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익명 : 너무 당연하고 간단하지만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사실

너무 당연하고 간단하지만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사실 익명 안녕하세요. 저는 페미니스트고, 그간 트위터의 상황을 지켜보며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렇게 저의 생각을 표현할 자리가 생겨서 기쁩니다. 성노동자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편협하거나 부족한 글이 될까 다소 염려스럽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모쪼록 너그러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며칠 전 한 타투 노동자의 트윗을 읽었습니다. 타투 상담을 하는 오픈채팅방에 한남이 들어와서 성적 요구를 하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쓴이는 타래로 ‘타투 합법화가 되어야 이런 사람들을 신고하고 처벌받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작업자들의 안전을 위해 타투 합법화가 되길 바란다’는 내용을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하며 그 트윗을 인용했습니다. ..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루비 :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루비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도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전부터 대면 업종에서 일했습니다.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는 윗사람에게 한마디도 할 수 없어 퇴사했고, 그 이후로 아직도 안정적인 근무처를 찾지 못했습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힘들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마스크는 우리 삶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대중교통이나 공공시설조차 이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되는 조치입니다만, 병증이 없고 상대적으로 민감한 정도인 저에게도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근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스크 상시 착용 수칙을 사업장에 적용하였을 때는 마냥 수긍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직 3개월 만에 어렵사리 취..